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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상식,사회,문화,국제,정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알아보자

by 장봉다리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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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준 [문화대혁명]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무산계급(노동자/피지배계급) 문화대혁명으로도 불린다. 1966년~1976년까지 10여 년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역대급 파괴 운동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자신들의 손으로 파괴시켜버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다. 문화대혁명의 본래의 목적은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관습, 낡은 교육, 낡은 정치 등 모든 것들을 타개하여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회주의 문화를 만들자였으나, 실질적으론 그냥 자국의 문화, 국민들을 파괴시켜버린 문화 대숙청이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피해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10여 년간의 기간 중 중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들의 기반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중국 고유 민족인 한족 외에도 소수민족, 고구려, 발해 등의 옛 국가들 유적이 약탈되거나 파괴되었다. 거기다 중국이 그동안 받았던 침략이나 전쟁도 문화 대혁명보다 중국의 문화를 파괴시키지 못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최악의 사건으로 남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장제스국부천대(장제스의 국민당이 마오쩌뚱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대만으로 중화민국 정부를 옮겨간 것.)를 할 당시 중국에 있던 수많은 문화재들을 옮겨가지 않았거나, 저우언라이(중화인민공화국 초대 국무원 총리)가 사병들을 시켜 몇몇 문화재들을 보호하는 조치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남아있던 문화재들 조차 볼 수 없어 기록이나, 남겨진 문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던 상황이 됐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내용을 모르고 이름만 보고선 중국의 문화가 혁명으로 인해 발전했거나, 오래된 중국 고유문화를 잘 번영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쉽지만, 앞서 말한 듯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자국의 오래된 문화와 역사를 파괴한 것이다. 4~5천 년의 중국 역사를 중국인들 스스로 없애버린 꼴이니 최근에 와선 자기들 문화가 없어 다른 국가의 문화와 역사를 죄다 자기들 문화, 역사라고 우기고 있는 중국인들이 참으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문화대혁명이란 이름도 마오쩌둥과 홍위병들이 스스로 만든 용어로, 마오쩌둥은 죽어 없지만 문화대혁명을 스스로 깎아내린다면 중국 공산당의 권위가 떨어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문화대혁명이라는 빚 좋은 개살구식의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론 그냥 무자비하게 지들 문화를 파괴하고 갈아버린 사건.

 

홍위병은 문화대혁명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실제 병사는 아니고 학생들 위주로 비밀리에 조직된 것이지만, 문화대혁명 당시 국민, 문화, 역사들을 폭력적인 행동으로 피해를 입힌 준군사조직으로도 보는 측면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운동권 조직이다. 마오쩌둥의 책임도 크긴 하지만 실제 중국의 많은 문화유산과 서적 등이 홍위병들로 인해 소실되었고, 이로 인해 중국의 문화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음악, 미술, 영화, 체육,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까지 많은 업계에서 말도 안 되는 정책과 숙청이 자행됐고 이러한 소프트웨어들의 파괴로 인해 지금까지도 중국이 하드웨어로는 미국을 따라잡으려고 뒤쫓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로는 감히 명함도 못내 밀정 도의 수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표절공화국으로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재 많은 나라(특히 한국)의 플랫폼을 가져다 자기네들이 만든 것 마냥 쓰고 있고 제대로 된 방송 프로그램 기획조차 하지 못해 수입해 가져다 쓰거나 불법으로 표절해 쓰거나 하는 이유가 많은 것을 하나의 예로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지도 이미 수십 년이 지났지만 중국의 문화계는 한국, 일본 심지어 대만, 홍콩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열세인 수준이다. 

 

중국 콘텐츠로써 유명한 것들은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대만과 마카오, 그리고 특히 홍콩에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중국 본토 내에서 만든 문화 콘텐츠들은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많고 중국 공산당 위주의 국뽕을 고취시키는 것들이 많아 실제 영향력은 변변치가 않다. 

 

문화대혁명 실패로 인한 중국의 경제 피해액은 약 5천억 위안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기준으로 보면 90조 원이 넘어가는 금액으로 현재 중국의 경제력으로 보면 감당할 수 있는 액수지만 문화 대혁명이 일어난 시기의 경제력으로 봤을 때 당시 중국의 총 GDP가 약 4600억 위안으로 추산이 되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액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문화혁명의 후유증으로 1980년대 당시 인구가 2천만 명도 안되던 대만에게 경제력 40%를 따라 잡혔고, 중국 입장에선 일개 도시 수준인 홍콩의 경제력이 중국 전체의 경제력을 1/4까지 따라 잡혔다. 

 

문화혁명은 그야말로 중국 국민, 문화, 역사, 경제 등 모든 것을 후퇴시켜버린 최악의 운동/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으로 피해를 입은 분야

 

  • 중국 고유 전통문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분야 중 하나가 전통, 문화 분야인데, 많은 문화유산이 파괴&소실되었고, 전통문화의 계승이 10여 년간 단절이되기도 했다. 방화, 약탈, 철거, 도굴 등으로 사라진 문화재만 10만여 점으로 추산된다.

 

  • 종교문화

중국의 종교들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티베트에서 가장 큰 사원인 간단 사원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렸고, 수많은 경전 및 문서들은 화장실 휴지로도 사용되었다. 이 경전들 중 8세기에 인도에서 직접 가져온 산스크리트어 사본들도 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었다면 세계 불교사가 다시 쓰였을 거란 얘기도 있다. 특히 홍위병들이 타도하고 때려 부셔야 할 목표 1순위로 종교분야를 정했으며 소수민족들의 종교가 주 목표였다. 무려 6천 개 이상의 티베트 불교 사찰이 파괴되었고 많은 승려들이 쫓겨나거나 고문을 당해 학살당하기도 했으며, 홍위병들은 시체들이 썩을 때까지 대로변에 전시했다고 한다.

 

  • 무술

사제관계의 예의가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무술분야도 박살 내버렸다. 특히 유명한 소림사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무승이 소림사에서 무술을 전수하고 익히던 전통이 끊어졌고, 없어진 무술도 많다. 그래도 민간에서 전해진 소림무술은 없어지지 않았고, 현대에 들어와 소림사를 복원했지만, 제대로 복원이 된 것인지 의문점이 드는 문제도 있다. 

중국의 많은 무술 문파나 유명한 무술가들의 고유 기술은 당연 복원 불능이고, 기초수련법조차 알 수 없게 된 무술들이 많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무술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고서적의 기록 혹은 그림을 참고하거나 무술계를 은퇴한 지 오래된 노령의 무술인들의 기억들을 최대한 끄집어내 복구한 것들이라고 한다. 

 

  • 스포츠

스포츠도 문화 대혁명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의 축구나 농구 분야에서도 많은 인재와 기록, 흔적들이 사라졌다. 문화 대혁명 당시 중국은 선수들이 외국물에 젖어들까 봐 올림픽은 물론이고 모든 해외 스포츠대회의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다. 중국 슈퍼리그 팀들 중에서 역사가 오래된 팀들의 1970년대 후반 이전의 역사자료들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의 국기라 불리는 바둑조차 4 구악이라고 하며 금지시켰었다. 

하지만 스포츠 분야는 그래도 중국의 수많은 인재와 소련에서 들여온 트레이닝 시스템 덕분에 다른 분야보다 피해복구가 가장 빨리 됐다. 

 

  • 음식문화

궁중 예식을 기록한 문헌들의 다수가 문화 대혁명으로 사라졌다. 그 대표로 꼽는 것이 '만한전석'인데 이는 중국의 연회 요리로 청나라 강희제 시절 지배 민족인 만주족과 피지배층 한족 사이의 화합을 위해 만주족, 한족의 요리를 잔치에 같이 차려낸 코스요리로 '만한전석'이란 이름 자체가 만주족과 한족 모두의 잔치라는 뜻이다. 즉,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만한전석'의 요리 순서, 조리법 등을 담은 문헌이 없어져 코스요리처럼 순서대로 음식이 나가는지, 한 번에 늘어놓는 건지, 음식 종류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조리법은 어떻게 되는지를 아예 모르게 됐다.  그래서 중국은 청나라 시절 만한전석에 대해 알고 있던 환관을 찾아냈는데 이미 고령의 노인이라 기억을 할 수 없었고 최면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복원은 실패. 현재 중국에서 먹는 만한전석은 그냥 값비싼 샥스핀 같은 요리를 코스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 애니메이션

당시 애니메이션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 했던 특성상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기엔 수월했고, 문화 대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중국 소재의 애니메이션들이 있었고, 국제적으로도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역사 자체만 놓고 보면 중국이 일본보다 훨씬 먼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정도였는데 일본에선 1943년에 나온 모모타로의 바다 독수리가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었고, 공식적으론 1958년에 만들어진 백사전이 첫 장편 애니인데, 중국은 이미 1941년에 데즈카 오사무가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장편 셀 애니메이션 극장판 서유기를 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들었다. 하지만 문화혁명 10년간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작품수는 17개에 그쳤고, 이후론 일본에 애니메이션 산업이 정말 넘어가 중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만화 산업도 완전 개박살 났다.

 

  • 연극

연극분야는 문화 대혁명 시절 가장 많은 피를 본 분야이다. 유명 연극, 영화배우 출신이던 4인방의 수장이자 마오쩌둥의 부인인 장칭이 앞장서서 제대로 망가트렸기 때문이다. 장칭은 한 연설에서 '기존의 경극이 구시대적에 봉건적인 요소만 담고 있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주의와 맞지 않다. 모든 경극은 인민들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하며 경극 전반에 대한 수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정칭에 대해 반발하거나 수긍하지 않았던 경극배우들은 모두 숙청을 당했는데, 당시 경극 배우들에 대한 처우를 문화 대혁명 시절 홍위병으로 활동한 '첸 카이거' 감독이 [패왕별희]를 통해 리얼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 영화

중국의 연극계와 영화계는 경극으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문화 대혁명 이후 발전이 아예 정지되었다. 문화 대혁명이 끝난 이후 TV가 보급되면서 영화계에 타격을 준 것도 큰 이유이다. 영화가 왜? 중국 영화 유명한데?라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 까지 유덕화, 성룡, 장국영, 주윤발, 홍금보 등 지금도 알만한 배우들 중심으로 중화권 영화가 빛을 보며 발전하기는 했지만, 실제 저런 영화인들은 중국 본토 출신이 아닌 영국령이던 홍콩 출신 배우들이라는 점이다. 홍콩영화는 1997년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면서 이전의 명성을 정말 잃어버렸고, 또한 전성기 시절의 영화들은 홍콩영화라고 하지 중국 영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 국민성

문화 대혁명으로 잃어버린 것 중 가장 큰 것이 아마 국민성이 아닐까 한다. 문화 대혁명 시절 전통적인 미풍양속들은 봉건적인 잔재로 취급을 받아 자식이 부모를, 학생이 선생을 공격하는 행위가 장려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과 편견 그리고 진짜 좋지 않은 인성이 문화 대혁명 세대와 그 세대를 보며 자라온 세대들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문화대혁명 시절엔 지식인을 천대했기 때문에 지성을 외치던 사람들에게 코웃음을 쳤고, 질서도 붕괴됐었 기 때문에 예절과 절차도 모르고, 목소리가 높은 사람이 이기던 시대였으니 언성이 시끄럽고, 소련을 수정주의 미국을 자본주의로 적대시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쇼비니즘(맹목적인 애국주의), 즉 국뽕에 취해 대책 없는 나락의 길로 빠지게 만들었다.

 

 

 

문화 대혁명 이후 현재

 

현재 중국의 경제력, 소프트웨어는 문화 대혁명 이후 사회주의 개혁개방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고 빠르게 회복되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경제력은 그냥 내버려두더라도 소프트웨어는 다른 강대국들의 소프트웨어 파워를 따라 하는 것뿐 잃어버린 중국의 문화를 복구해 성장한 것이 아니다. 문화 대혁명 이전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소프트웨어 파워를 가지고 있었지만 문화 대혁명으로 한 번에 박살나버리고 이 영향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복구되지 않았다. 단순하게 문화유산을 없애버린 것이 아닌 문화가 발전하기까지 필요한 기반까지 모조리 파괴해버려 단 10년 동안 4천 년간 쌓은 문화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당국의 문화 검열 및 통제도 문화 회복을 늦추는데 한몫하고 있다. 문화산업의 검열과 통제를 더욱 강화해 그나마 복구시킨 문화도 도로 물거품 만들고 있는 상황에 시진핑 독재 기정사실과 1당 1 체제로 확실히 굳어가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당 선전용 콘텐츠 위주의 제작방식 등이 더욱 발목을 잡아 완전한 회복은 어려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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