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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여러가지 사실들

독립운동가 "유관순"열사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들

by 장봉다리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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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유관순

 

대한민국 독립에 있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치고 끝까지 투쟁한 위인과 열사들이 많이 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유관순" 열사이다. 한창 이쁘고 고운 나이인 17살에 혈혈단신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며 많은 이들과 함께 3.1 운동에 참여해 만세를 외치다 친일파인 정춘영에 의해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가 온갖 고초를 겪고 끝내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대한민국의 위인이자 열사이다.

 

최근 밝혀진바에 따르면 유관순 열사는 옥사가 아닌 일본 헌병들에게 장살을 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그것이 고문을 당해 죽었는지, 고문 후유증으로 죽은 건지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모두 알고 있고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것까지도 알고 있지만 그 외적으로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우리가 몰랐던 여러가지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자.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위 서대문 형무소 수감될 당시 찍은 사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이 사진을 보며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진만 보더라도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유관순 열사의 생김새는 청초하고 갸름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감옥에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느낄 수 있게끔 해주는 사진이다.

 

  • 5만 원권이 정식으로 발행되기 전, 5만 원권에 들어갈 여성 인물로 가장 강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신사임당으로 결정되었는데, 그 이유로 당시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찾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사진들이 얼굴이 많이 붓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라 고문받기 전의 사진을 구하기 힘들어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 유관순 열사의 가족들(아버지, 어머니, 형제들)도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게다가 부모님 모두 일본군의 총칼에 의해 사망하였다. 하지만 유독 유관순 열사만 비중있게 다뤄지고 많이 알려진 이유가 아무래도 당시 유관순 열사가 어린 소녀에 만세운동을 앞장서서 했었다는 상징 때문에 가족들의 독립운동이 좀 더 다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유관순의 아버지는 유중권으로 자신의 사비로 고향에 학교를 지어 교육운동을 하던 계몽운동가였다. 또한 개신교 교인이어서 마을의 유지들과도 협력해 교회도 세우며 교육 및 계몽 활동에 많은 힘을 쏟던 인물인데 유관순 열사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이 받았다고 한다.

 

  •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시절 친구였던 남동순 할머니가 있는데 2010년 4월 3일 106세에 나이로 사망하였다. 유관순 열사 사망후 독립운동 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하였고, 광복 하루 전날인 1945년 8월 14일에도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는 고아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 인물들 중 대표적인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이 여럿 있다.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과 유관순 열사의 공통점이 모두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아직도 김활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2019년 2월 26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가로 추서할것을 의결하였다. 상훈법상으론 같은 공적으로 중복 수여가 될 수 없지만 '광복 이후 3.1 운동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국민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하였고, 비폭력, 평화, 민주, 인권의 가치를 드높여 대한민국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였다'는 것을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과는 별개 공적으로 인정하여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추서 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3등급 훈장인 '건국공로훈장 독립장'만 있었는데 이 훈장이 절대 낮다거나 평가절하할 만한 훈장이 아니다.

 

  •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 28일에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7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는데, 고문이 얼마나 끔찍하게 자행되었는지 이화학당에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반환 요구를 할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이를 거부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이화학당 교장인 룰루 프라이프가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받아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한다.

 

  • 2010년 초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유관순 열사의 전기를 삭제하려고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유관순 관련 단체들과 여론의 반발로 인해 삭제는 취소되었다.

 

  • 2015년 3월 1일 대한민국 해군은 손원일급 잠수함 6번함의 함명을 유관순 함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여성 인물 최초로 한국 해군함의 한 명으로 결정된 것이다.

 

  •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가 대표적이지만 이외에도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고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윤희순, 영화 '밀정'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 김마리아, 박자혜, 권기옥, 차경신, 박차정 등이 있다. 또한 좌파진영 인물 중에서는 조선의용대에서 백마 탄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김명시 장군이 있고 여성 최장기간 수감자(12년)였던 박진홍, 이효정, 이병희, 이순금 등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 갖은 고초와 침울한 표정의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페이스 앱 AI로 밝게 미소 짓는 얼굴로 구현하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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